호호체육관과 평등의 감각 (비서공 이재현 활동가 활동 후기)



오랫동안 호호체육관 서울대학교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해온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이재현 활동가가 사회 진출을 앞두고, 호호체육관 활동을 돌아보는 글을 남겨주었습니다(제목은 편집진이 임의로 붙였습니다). 아래에 전문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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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우습고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대학 입학을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나 독서 기록에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지향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졸업한 이후 지금은 그러한 범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리고 그러한 범주가 유의미한 것인지 자체를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운동에서 앎과 몸의 관계를 고민할 때 특권적인 뉘앙스를 가진 그런 말이 과연 유의미할까요. 그래서 자연히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 되었지요.

학습에 종사하는 학생이나 지식생산 노동에 종사하는 연구자라는 범주와는 구별되는 '지식인'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비판적'일 수 있는 것일까요. '노학연대' 운동이란 '지식인'으로서의 학생이 사회경제적 계급으로서 지시되는 노동자와 연대하는 운동일까요. 그러한 고전적인 이항적 구도에서 노동자와 학생 사이의 차이는, 때로는 그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위계의 형태로서 혹은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끊임없는 자책의 형태로서 지속되며 영원히 원환 속에서 극복될 수 없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가 그러한 고전적인 구도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말해 왔지만, 그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노동자운동과의 연대 속에서 때로는 '배운' 주체로서의 역할을 조금은 불편하게 기대받을 때 과연 나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기나 한지 알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서도 '교육' 사업이 지식을 확산할 뿐 평등한 지식의 생산을 과연 가능케 하는 것인지 의심해보기도 했습니다. 파업이나 노동안전 투쟁 속에서 때로는 노동조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수업에서보다 많은 것을 학생활동가로서 배웠지만, 동시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와 현장에서 생성된 지식을 다욱 쉽게 통용되고 또 수용되는 형태의 언어로 번역하고 전달하는 역할에 스스로를 국한시킨다면 현장의 노동자들과 평등한 '동지'가 될 수 있을지 회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호호체육관'을 만났고, 한 학기는 탁구로, 두 학기는 배드민턴으로, 한 학기는 알렉산더테크닉으로 졸업 전 2년 간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모두의 스포츠권을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가시적인 투쟁이 있는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가장 벅찬 투쟁의 자리에서들만큼이나 뜻깊었습니다. '호호체육관'에서 학생은 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는 '고마운 학생'의 자리에서도, 은퇴하는 노동자 선생님들께 그동안 일상을 지탱해 주심에 꽃다발을 드리는 '감사하는 학생'의 자리에서도, 노동조건에 대해 조사에 응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조사원'의 자리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의 위치성도 너무나 중요하고 값진 자리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관계가, 차이 속에서도 평등을 감각할 수 있는 '동지'의 관계가 무엇보다 필요했으니까요.

저는 '호호체육관'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사업이기도, 대학의 체육관을 모두의 것으로 열어내고 생활체육의 권리를 일상 속에 확산하기 위한 사업이기도, 노동조합이 더욱 깊고 힘있게 스스로를 조직해나가기 위한 사업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호호체육관'이 어떠한 체육 교육이나 봉사 혹은 복지 사업을 넘어서는, 혹은 어떤 운동이 잘 되기 위한 수단을 넘어서는, 하나의 독자적인 심급을 가진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를 넘어서는 것이 마르크스가 천착하였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임을 주지할 때, 우리는 모든 지식생산의 노동에 자신의 몸이 결부되어 있음을 그리고 모든 움직임 속에 나의 몸에 대한 지식이 결부되어 있음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한 앎을 감각하는 과정은, 우리의 몸이 서로 다른 노동과의 관계 속에 어떻게 제약되고 변형되어 왔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알면서 몸을 더 잘 그리고 대안적으로 사용하고 그 속에 기쁨을 느낄 방법을 찾아갈지 고민하는 일이었습니다.

스포츠에 대한 지식은 일방적으로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걸레를 짜느라 떨리는 손목, 중량물을 드느라 뻐근한 허리, 때로는 고개 숙여 공부하고 휴대폰을 보는 자세 속에 구부러진 목이라는 우리 몸의 조건 속에서 스스로 그리고 함께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각자가 이를 찾고 그에 기반하여 몸의 움직임으로 관계 맺는 것이 '호호체육관'이라는 운동(중의적 의미에서)이 갖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탁구대 앞에서, 코트를 사이에 두고, 때로는 매트 위에서 '동지'가 되는 순간을 감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가 우리의 몸과 얼마나 결부되어 있는지 체험하는 과정은 때로는 위계나 자책으로 나타나는 차이가 어쩌면 얼마나 허구적으로 분할된 것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런 평등의 감각은 어쩌면 일시적일지 모릅니다. 한 시간의 스포츠가 끝나면 우리는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종종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자리로 돌아가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평등의 감각을 몸으로 느껴본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이고, 앞으로 어떻게 연대하며 관계를 만들 것인지 고민할 때마다 몸의 습관처럼 튀어나오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 감각을 앞으로 활동할 학생들도 더 많이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호호체육관'에 변치 않는 감사와 응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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